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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로 사거나 한 번에 수십 권씩 사는 건 어때요?
한언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 2009.09.09 | 추천 3 | 조회 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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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로 살 때는 신중하게 고민하라시리즈로 직접 책을 산 경험은 없어도 방문판매를 통해 전집을 구입한 엄마들이 많을 것이다. 전집은 한 질이 보통 10권에서 4,50권 이상이다. 내 친구가 아이를 낳았을 때다. 어떻게 알았는지 방문판매원이 찾아왔다. (그들의 정보 수집 능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친구는 방문판매원이 추천하는 그림책시리즈를 보고 홀딱 반해서 한꺼번에 100여 권이나 사들이고 말았다. 이 책을 다 읽어주기도 전에 아이는 어느새 세 살이 되었고 그때쯤 방문판매원이 또 찾아왔다. 누구네 집에 아이가 몇이 있으며 아이들의 나이는 몇 살인지 궁금하면 방문 판매원에게 묻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에도 판매원은 친구에게 다른 시리즈를 추천했는데, 귀가 얇은 내 친구는 또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어쨌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구입한 책이므로 친구는 한 권씩 읽어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펼쳐서 꼼꼼히 읽어보니 책의 허상이 드러났다. 삽화만 그럴듯하게 화려할 뿐 내용은 보잘 것 없는 가벼운 책이었던 것이다. 친구는 비싼 돈을 투자하여 집에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 놓았지만 읽을 맛은 떨어지고, 버리자니 아깝다며 속상해했다.

나는 반 년, 혹은 1년 동안 읽어줄 책을 한꺼번에 사오지 않는다. 책을 고를 때는 먼저 내가 꼼꼼히 읽어서 살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자라고 있다. 따라서 나는 달마다, 혹은 정해둔 시간마다 아이의 이해능력과 선호도를 고려하여 책을 조금씩 구입한다. 한 번에 3권~5권 정도 사서 반복해서 읽는다. 아이들은 물론 나까지 너무 읽어 질릴 정도일 때 새 책을 사러 간다. 시리즈를 권유하는 방문판매원은 내가 매번거부하는 불청객이다.

그런데 이런 친구도 있다. 이 친구는 나처럼 천천히 책을 고를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 이름난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 중 40여 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시리즈 속에는 이야기마다 난이도가 다른 책들이 들어 있었는데 친구는 두 살 아이에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고르게 했다. 두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도 읽고 싶은 책과 아닌 책이 구분이 되는지 아이가 영특하게 자신의 수준에 알맞은 책만 골라냈다고 한다. 문자가 많고 어려운 그림책은 아이의 선택을 받지 못했고, 호기심을 끌지도 못했다. 이 시리즈는 서점에서 판매하지 않는 출판사의 직접 판매도서였는데 읽을수록 괜찮더란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봤더니 이 시리즈 안에 속한 책들은 모두 외서로서 이미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책들이었다.

이 책들은 뒤에 나오는 권장리스트에는 들어 있지 않다. 하지만 나의 다음 책인 《영어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목록 속에 고스란히 숨어 있다. 나는 이것을 나중에 우연히 발견했다. 만약 이 목록이 궁금하다면 《영어그림책 읽어주는 엄마》(2009, 한언)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시리즈 도서는 직장 다니랴 집안 일하랴 바쁜 엄마들에게 하나의 선택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고르기 전에 반드시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분량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끼워놓은 도서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돈이 낭비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괜히 생각 없이 책을 구입하여 아이가 다른 좋은 책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 많이 사는 것보다 꼼꼼히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나는 가끔 서점에 갔을 때 그곳에 있는 그림책 코너를 그대로 집으로 가져오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 가계부 걱정만 아니라면 정신없이 책을 사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 굉장히 다행스럽다. 한 권, 한 권 꼼꼼히 고르고 조금씩 사들여 반복해서 읽어주었기 때문에 나와 아이의 손때가 묻은 그림책은 더 가치가 있다. 만 원짜리 그림책이 아니라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우리의 사랑과 추억이 속속들이 배어 있는 것이다.

나는 늘 부모들에게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세요’라고 강조한다. 만약 서점에서 책을 사오는 것으로 부모의 할 일이 끝난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아이들이 진짜로 바라는 것은 부모와 함께 이야기를 읽고, 신체를 접촉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결국 부모는 책을 얼마나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 권, 한 권 함께 읽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세 살이 지나자 ‘그림책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더 자주 서점을 드나들었다. 이런 시기부터는 아이들의 이해력이나 선호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내가 고른 책 중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짐작했던 책들이 더 사랑을 받기도 했다. 안데르센 대상을 받은 토미 웅거러Tomi Ungerer의 《I Am Papa Snap and These Are My Favorite No-Such Stories》(국내 출간 안 됨-편집자주)란 책이 있다. 이 책에는 수십 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이야기도, 삽화도 모두 이해불가능의 극치를 달리지만 아이들은 이 책을 너무 너무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상상을 초월한 엉터리 같은 내용을 더 재미있어 한다. ▣ 아이와 책이 가까워지게 하라우리 집에 있는 그림책 중에는 한 번만 읽고 꽂혀 있는 것이 없다. 어느 것이나 읽고 또 읽어서 아이들은 어느 책에 어떤 말들이 나오는지 훤히 알고 있다. 가끔 아이들과 얘기하다 그림책 속에 등장했던 특별한 단어들을 인용할 기회가 생기면 나는 놓치지 않고 물어본다.
“얘들아, 이 말은 어떤 그림책에서 나왔었지?”
그러면 매번 아이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거침없이 정답을 외친다. 아이들의 머리는 컴퓨터 검색 시스템보다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강연 준비를 하다가 샘플로 여우가 친구를 사귀는 내용의 낡은 그림책 한 권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책장 전체를 샅샅이 훑었는데도 책이 나오지 않는 거였다. 기운이 빠진 나는 마지막으로 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딸은 내 얘기를 듣더니 느긋한 표정으로 “그 책은 표지가 핑크색이에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작은 힌트로 나는 쉽게 책을 찾을 수가 있었다. 도대체 아이들의 뇌에는 얼마만큼의 가능성이 들어 있는 것일까? 어떻게 그동안 읽은 수많은 그림책 중에서 한 권의 표지 색깔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까?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우리 집에는 책들이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 많은 책들을 도저히 다 꽂아둘 수가 없었다. 고민한 끝에 정기적으로 책 정리를 하면서 아이들의 연령에 맞지 않는 책이나 내가 너무 많이 읽어서 보기만 해도 지겨운 책들은 상자에 담아두었다.

언제인가는 한 번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2년 전쯤 내가 넣어두었던 책 상자를 열었다. 옆에서 놀고 있던 오누이가 그 책들을 보더니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달려왔다.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도대체 어디 가 있었니? 너무 보고 싶었어!”
책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애틋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은 들고 있던 장난감을 던져버리고 책 상자를 가져가더니 한 권, 한 권 펼쳐보기 시작했다. 광부가 황금을 발견했을 때가 꼭 저런 모습이리라.

나는 상자에 넣어둔 책들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글자를 깨치면 그때 보여주려는 생각이었다. 자음과 모음을 금방 익힌 아이들에게 글자가 적고 활자가 큰, 게다가 내용까지 환히 알고 있는 그림책을 주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독서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 시기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책들을 상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아마 아이들은 중학생, 혹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이 책들을 보고 추억을 되새길 것이다.

언젠가 대학교에 가서 강연을 했던 때였다. 한 유아교육학과의 대학원생이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선생님, 저는 어릴 때 재미있는 그림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참 아쉬워요.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도 그림책을 좋아해요. 아이도 아니고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도 아닌데 서점의 어린이도서 코너에 오래도록 서 있는 이상한 어른이에요.”
그림책을 절대 하찮게 보지 말라. 짧은 이야기지만 그 문자와 그림 안에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다양한 연령의 독자들에게 읽혀지면 그 맛과 의미도 천차만별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에서 여름방학을 보냈을 때 열세 살 난 조카의 책장에서 우연히 《아낌없이 주는 나무》(138p 참조)라는 그림책을 보게 되었다. 미국의 시인이며 동화작가인 쉘 실버스타인의 작품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대다수가 0세부터 99세까지 모든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품격이 있다.
특히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아주 쉽고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말해주고 있다. 나무의 사랑을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갖는 무한한 사랑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셸 실버스타인 지음┃시공주니어 나무는 소년과 놀아주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지만 어른이 된 소년은 나무를 잘라 팔아버립니다. 세월이 흘러 빈 몸으로 나무를 찾아 온 노인. 남은 그루터기마저 기꺼이 내주는 나무의 사랑이 눈물겹습니다.

그때 이 책을 4살, 7살이었던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더니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나는 이 작품을 문자 그대로 읽었다. 이야기 안에 들어 있는 심오한 주제를 이해시키려고 따로 노력하지 않았다. 설사 아이들이 작가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도 따로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요구대로 읽고 또 읽었을 뿐이다. 나는 아이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남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스스로 책 속의 아름다운 뜻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렇게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지고 친구가 되어가는 느낌이 너무 좋다.

출처 | 한언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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