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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배우는 학습 도구, 아기의 몸
예담 「아기 성장 보고서」 | 2009.02.06 | 추천 13 | 조회 9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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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들의 운동 발달 속도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생후 9개월째에 걷는 아기가 있는가 하면 12개월 혹은 15개월째가 되어서야 걷는 아기도 있다. 물론 이웃집 아기가 11개월에 걷기 시작했는데 자기 아기는 16개월이 돼도 걷지 못한다면 괜시리 초조하고 불안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기의 운동 발달 속도는 경우에 따라 다소 느릴 수도 다소 빠를 수도 있기 때문에 크게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보건과학센터의 크리스 존슨 박사의 말에 따르면 “아기가 생후 16개월이 지나 걷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학교에 갈 나이가 됐을 때 급우들보다 운동기능이 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는 아기가 발달 과정의 모든 단계에 빨리 도달하도록 강요할 필요가 없다. 물론 발달과정이 너무 늦거나 너무 빠른 경우에는 주의 깊게 아이를 살펴봐야 한다. 혹은 아기에게 스스로 동작을 행할 기회를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간혹 몸을 뒤집어야 될 시기의 아기를 항상 안거나 붙들고만 있었다면 그건 아기의 성장 발달이 늦은 것이 아니라 아기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발달 지연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기에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기 성장 발달의 일반적인 기준은 분명 존재한다. 보통 생후 2개월 무렵부터 아기는 자신의 몸을 어느 정도 가눌 수 있고, 그러다가 약 3개월이 되면 팔뚝으로 몸을 지지하면서 머리와 가슴을 들어 올린다. 아기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향후 몸을 뒤집을 때 사용할 근육을 강화시킨다.

몇몇 아기들은 3개월 무렵에 스스로 몸을 튕겨 몸을 뒤집기도 하지만 뒤집기는 목과 팔 근육이 강해야 하고, 척추를 회전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하며, 체중을 좌우로 이동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기들은 4개월 정도에 뒤집기를 한다. 그리고 척추를 회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날, 아기는 드디어 몸의 무게중심을 한쪽으로 옮겨 뒤집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아기는 상체와 팔의 힘이 강해지고 부축해 주면 앉아 있을 수 있으며 균형을 잡기 위해 기댈 때가 많다. 여기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근육과 신경이 발달하고 균형을 잘 잡는 기술을 익혀 혼자 앉을 수 있게 된다.
뒤집기가 가능해지고 아기가 혼자서 앉을 수 있게 되면 아기들은 곧장 기어 다니기 위한 도전에 돌입한다.

아기가 기기 시작하면, 비로소 혼자 힘으로 세상 탐험을 나선다. 또한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아기의 시선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스스로 공간을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아기들은 차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주위 공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깨달아간다. 한곳에 누워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세상 경험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아기 성장 실험> 생후 5개월, 지윤이가 ‘기어 다니기’에 도전하다!

태어난 지 5개월 된 지윤이는 허리를 들어 올려 두 팔로 버티며,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기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불과 한 달 후, 지윤이는 능숙하게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지윤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빨리 기기에 성공한 편이다. 생후 1년이 되어서야 기기를 하는 아기들도 있으니 말이다.

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아기는 이제 ‘물건 잡고 혼자 일어서기’에 도전한다. 이때 아기들은 보통 가구를 잡고 일어서기 때문에 이 시기를 ‘가구의 시대’라고 부른다. 아기들은 생후 6~9개월 사이에 가구를 잡고 일어섰다 넘어지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다리의 힘을 기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기는 가구를 잡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세상을 향한 첫 걸음, 걸음마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같은 동작은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서도 볼 수 있다. 몸은 물론,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신생아가 보이는 걷기반사는 상당히 체계적이다. 신생아는 발이 딱딱한 표면에 닿으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듯이 다리를 교대로 움직인다. 이것은 의도적인 걷기가 아니라 단순한 반사행동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기의 몸속에는 이미 걷기 위한 회로가 짜여 있다고 한다.

미국 인디아나 대학 심리학 교수 에스더 틸렌은 이를 러닝머신 실험을 통해 확인시켜 주었다. 러닝머신 실험은 아기의 발에 자극을 가했을 때 어떤 행동패턴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아기 성장 실험> 아기의 몸속엔 걷기 위한 회로가 짜여져 있다? 러닝머신 실험

우선 아직 기는 방법밖에 익히지 못한 생후 7개월 된 아기를 러닝머신 위에 올려놓았다. 이때 아기는 혼자 설 수 없으므로 한 사람이 아기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러닝머신 위에 설 수 있도록 지탱해 주었다. 러닝머신이 작동하자 아기의 한쪽 발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러닝머신이 아기의 발을 잡아당긴 것이다. 그러자 아기는 마치 걸어가는 것처럼 다리를 움직이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아기는 자신의 몸속에 걷기 패턴을 지니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왜 아기는 걷기반사만으로는 걸을 수 없는 걸까? 에스더 틸렌 교수는 아기가 왜 걷기반사만으로 걸을 수 없는지, 걷기 위해선 무엇이 더 필요한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걷기반사는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걷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들이 실제로 걷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어 스스로 균형을 잡아야 하고, 똑바로 설 수 있어야 하며, 이 다리에서 저 다리로 혼자 체중을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기들은 사전에 걷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합니다. 발차기를 하는가 하면 발을 입에 넣기도 하고, 발목을 붙잡고 흔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점점 복잡해지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아기가 다리를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신호이자 부축 없이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아기에게 자신의 몸을 조정하는 능력과 몸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아기는 소파나 가구에 의지 않고 자신의 두 발을 움직여 세상을 향한 행진을 시작한다. 1년이 넘는 긴 과정을 거쳐 드디어 걷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기가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아기에게 걷는다는 건 균형을 잡고 다리를 옮기고 앞으로 나가는 능력을 모두 결합시킨, 새롭고도 대단한 경험인 것이다.

그런데 처음 걷기 시작한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긴장한 탓인지 주먹을 꽉 쥐고, 양팔을 들고 걷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걸음마를 배운 이후 한참 동안이나 이런 모습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걸을 때 뇌의 조정에 의해 팔과 다리의 근육을 연속적으로 움직인다. 이렇게 여러 근육을 조정할 줄 알아야만 능숙하게 걸을 수 있는데 이것은 아기의 뇌로서는 무척 생소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뇌는 어려운 문제를 단순화시키기 위해 팔과 다리를 함께 움직이도록 명령을 내린다. ‘뇌의 커플링(coupling)’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뇌의 커플링이란 뇌가 걷기와 같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뇌의 재조직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뇌가 저절로 재조직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퍼듀 대학교 신체운동학 다니엘라 코베타(Diniela M. Corbetta)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린 아기들은 마치 만세를 부르듯 양손을 치켜든 든 상태에서 아장아장 걷습니다. 팔과 다리를 연속적으로 움직이며 걷는 성인의 걷기와는 사뭇 다르지요. 그러면 아기는 왜 어른처럼 걷지 못할까요? 뇌에게 있어 팔과 다리의 근육을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과 다리가 같이 움직이도록 커플링을 하는 것입니다. 가위질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는 어른들과 달리 손이 아니라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 가위질을 합니다. 아직 뇌가 손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니까 함께 움직이도록 커플링을 한 것이지요.”

뇌의 커플링은 일시적으로 발육이 일보 퇴보하는 현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보 전진을 위한 퇴보일 뿐, 아기가 새로운 운동기술에 익숙해지면 다시 원상복구된다.
예를 들면 아기들은 걸음마를 익히기 전에 양쪽 손을 다 쓰는 과정을 거쳐 한쪽 손을 다른 쪽 손보다 잘 사용하는 발달단계에 도달한다. 그러나 걷기 시작하면 한쪽 손을 더 잘 쓰는 발달된 단계는 사라지고 양손을 다 쓰는 단계로 일시적으로 퇴보한다. 왜냐하면 걷기 위해서는 자세의 재편성, 균형, 정신 집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뇌가 재구성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걷기’ 라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뇌가 커플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걷기에 자신감이 붙으면 다시 한쪽 손을 더 잘 사용하는 단계로 돌아온다.
세상의 모든 아기는 이처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단계적인 운동 발달이 이루어진다. 가끔 다른 아기들에 비해 운동 발달이 빠르거나 느린 아기도 있지만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운동기술을 습득한다.

운동 발달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손 전체를 잘 조절할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손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자신의 아기가 다른 아기들보다 빨리 걷는다면 발, 다리, 팔 동작을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걷기는 발, 다리, 팔 동작에 대한 조절력이 모두 결합되어야만 가능한 동작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운동 발달은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아기의 발달 이상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발달 속도는 지문처럼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만 생후 3개월이 되었는데도 아기가 머리와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거나 걸어야 하는 시기를 훨씬 지났는데도 걷는 것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병원을 찾아가 보는 것이 좋다. 반면 운동 발달이 너무 일러도 문제다. 많은 엄마들이 아기의 발달과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데,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아기가 일어나 앉는 것을 습득하기도 전에 계속 서 있다면 경련성 근육마비를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뿐만 아니라 운동 발달은 아기가 세상을 인식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아기들은 머리와 가슴 들어올리기, 뒤집기, 혼자 앉기, 기기, 걷기 등의 새로운 운동기술을 습득할 때마다 새로운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아기의 시선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한다. 이제 서서히 온몸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스펀지가 되어가는 것이다.

출처 | 예담 「아기 성장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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